<결백하진 않아도 그러니까 순수하잖아요>
어떤 것을 범하였습니다. 그것이 비윤리적·반사회적인 성분을 띈다고 판단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량의 독약처럼 묻어있어 그 함량이 너무도 미세한 나머지 무엇도 해치지 않았다면 이것은 하마르티아1)입니까? 혹은 아닙니까? 의지-행위, 의지-결과의 일치와 불일치의 모순을 일부분 피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지는 않았습니다. 빗나가기도 했습니다만 결코 무지나 무의식, 판단착오나 의도치 않음에서 기인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원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고민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길을 걸어온 것 뿐이라면 이것은 하타2)입니까? 혹은 아닙니까?
어떤 것을 범하여 다달은 곳은 파국이 아니라 순수였습니다. 깨끗하고 투명하고 매끄럽고 안전하고, 무결한 그런 곳을 떠올리셨습니까?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만 미루어보아도 순수라는 것은 언뜻 그럴 것만 같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진공상태로 가까워지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입니다. 겉으로는 매끄럽고 안으로는 투명한 이 진공은 타자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타자 있음의 상태, 즉 비동일성의 요소는 오염, 결함, 완전성 따위로 간주합니다. 아무런 입자도 파동도 존재하지 않는, 그렇게 모든 비동일성이 사라진 곳에서는 타자성도 무화됩니다. 표면과 내면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기에 가늠할 깊이도 무게도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형화와 획일화로 모든 것이 포획될 뿐입니다. 무결함은 순수가 아닌 단일의 징표입니다.
도달한 그곳은 차라리 조야했습니다. 단일의 무결함을 향한 인위와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맨 상태에는 세상이 멸망시켜가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입자와 결, 요철과 주름, 얼룩과 상처, 유기체와 무기체, 파동과 마찰 같은 것들을 내포한 맨 것이 순수의 징표이자 순수 그 자체임을 건져냈습니다. 세상이 맨 것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야 말 것만 같은 오늘날입니다. 원해지지 않으니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깡그리 사기가 되어버렸어요. 맨땅을 만져보고, 맨얼굴을 들여다보고, 맨몸으로 맞닥뜨려보는, 이제는 없어진 그런 일을 도모하다 보니 어떤 것은 범했습니다만, 결백하진 않아도 그러니까 순수하잖아요.
김한라
1) 하마 르 티아(ἁμαρτία) : 아리 스토텔레스의 「시학 」에서 처음 사용되는 말 로 어원은 활을 쏘거나 창을 던질 때 표적을 맞 추지 못 하고 벗어나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비극적 결함, 죄, 과실, 과오, 더나아가 불행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의미해명 에 논란을 일으키는 용어입니다.
2) 하타(הָאָטֲח : (고대 히브리 어로 ‘화살이 과녘으로부터 빗나가다’라는 의미로 인간이 생을 거쳐 자신이 가야할 길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즉 원죄를 은유합니다.
비평| 한재섭 글 보기
포스터 디자인|파이카 @pa_i_ka
촬영|서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