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 여성, 몸, 사건현장 (이-음 2022)»

2022. 05. 01 - 2022. 06. 30

이-음 2022
기획: 김서라
작가: 김유나, 정유승

여성의 몸은 환상이 아니라 ‘사건현장’이다. 상품의 환상을 전시하는 백화점의 유리창 저 너머에는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처럼 물신주의 사회는 여성이라는 환상을 빚어내고, 그 환상은 두터운 베일이 되어 여성의 신체를 비가시화하고 억압하곤 한다. 옷차림새, 행동, 지위, 말투까지 조정되곤 하는 여성이 길가에 전시될 때, 환상과 동시에 그의 신체는 폭력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면, 이제까지 덧씌워지곤 하던 ‘여성’ 그 뒷면에 있는 ‘몸’으로부터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기획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여성의 몸을 주시하고 그곳이 바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협작에 의한 사건의 현장이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사건 이후, 우리들 안에서 딸들이 태어나기를 고대한다.

 

5월 12일. 여성의 몸과 사건에 대해 진술하기 — 사건

5월 19일. 혐오와 수치심을 이겨낸 발화 I — 피의 연대기

5월 26일. 혐오와 수치심을 이겨낸 발화 II — 무한발설

6월 ○○일. 켜켜이 묵은 감정의 증언 — 억척의 기원

6월 ○○일. 우리 주위의 여성의 사건현장 찾기 — 이미지와 증언

 

| 1회 |

여성의 몸과 사건의 연관관계: 낙태, 성매매, 가정폭력 등 여성의 몸은 폭력의 대상이자 현장이 되었어도 누구도 그것들을 사건 취급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고 또 그녀들이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들의 몸 주변의 사회적 조건들은 그 자체로 ‘사건’이다. 사건 외부에 있었던 여성의 몸을 다시 ‘사건’으로서 다루기 위해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참고자료: 아니 에르노, 『사건』, 윤석헌 옮김, 민음사, 2019. / 오드리 디완, ‹레벤느망›, 2022.)

 

| 2회 – 3회 |

여성의 말을 막는 건 간혹 혐오와 수치심이다. 누군가로부터 혐오를 당하든,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하든, 이 감정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증언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발화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중요한 것은, 이 감정들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원리로서 사회적으로 이용되어왔다는 것이다. 혐오와 수치심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감정들을 극복한 여성들의 말을 살펴본다. (참고자료: 김해원, ‹피의 연대기›, 2018. / 뭉치, 『성매매 경험 당사자 무한발설』, 봄알람, 2021. / 마사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

 

| 4회 |

『억척의 기원』은 나주여성농민의 구술생애사다. 여성농민들이 몸으로 겪은 아픈 생애사를 읽어보고 후기를 나눈다. 여성농민들의 생애는 남편의 폭력, 외도, 무시, 생존의 고난으로 주름져있다. 그녀들은 어느새 몸이 역사가 되고 아픔이 됐다. (참고자료: 최현숙, 『억척의 기원』, 글항아리, 2021.)

 

| 5회 |

우리 주변에서 여성들이 처했던 사건현장들을 찾아 본다. 여성들이 당했던 부조리한 일상 속 공간은 아주 사적인 장소일 수도 있고, 집결지처럼 거대한 폭력의 현장일 수도 있다. 함께 찾아가보기, 혹은 이미지나 증언들을 나누기.

 

| 회고 |

다음은 김유나 작가가 ‘ ’(작은따옴표)를 모티브로 만든 이미지다. 위 이미지에서 특이한 것은, 한 쌍의 따옴표 사이의 비대칭적인 연결,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따옴표의 존재다. 위 작은따옴표 사이의 비대칭적 연결은 불안정성을 추측하게 한다. 문법구조가 만든 수평적, 일방성 안에 있지 못하고,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말이다. 완결된 문법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불안정한 말이라 하더라도 발화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작은따옴표 안에 있는 또 다른 작은따옴표는 큰따옴표의 존재를 암시한다. 다시 말해, 작은따옴표에 스스로 발화가능성이 잉태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 ’는 문법 상으로는 문장 부호의 하나이며, 인용한 말 안에 있는 인용한 말을 나타낼 때 쓰거나 마음속으로 한 말을 적을 때 쓴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할 때는 그 말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다는 보호막이기도 하며, 마음속에 있으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을 전제한 말이다. 무언가에 보호되거나 비밀스럽고 적나라한 말인 것이다. 숨겨온 사랑의 고백이나, 가해자가 무서워 말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증언이기도 하다. 이때 발화를 위해선 유리한 장소를 찾는 일이 필수적이다. 권력이 승인한 말을 따라 하면 쉽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작은따옴표 안에는 누가 대신해줄 수 없으며, 또는 권력을 가진 말에 억눌린 수많은 개별, 소수의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참다못해 일기장에라도 적고, 술상에서 도취의 힘을 빌어서라도 전했으리라.

정유승, 김유나, 김서라는 ‹여성, 몸, 사건현장›이라는 주제로 지난 세 달간 어디선가 발화되고 진술되고 구술된 여성들의 말들을 읽어내려갔다. 임신중지한 여성, 성매매여성, 억척스러운 시골 어매들의 진술은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짐작케 한다. 법을 어겨서, 혐오와 경멸을 받기 때문에, 무지하고 사소하다는 이유로 억눌리던 말들이 주변의 도움으로 발화한 순간, 여성들은 자신들의 장소를 열게 되었다. 이곳에서 우리 또한 마음 안에만 있던 말을 끌어낼 수 있는 장을 찾았다. 그리고 여기서 그 장을 가시화하려 한다. 우리는 또 다른 작은따옴표들을 만나길 염원하고 있다. 마음속에 표류하다 간혹 목구멍 근처에서 간질이는 말들에 씌워진 작은따옴표에 작은따옴표를 한 쌍 더 얹기 위해, 그래서 우리가 말하고 대화할 장소를 확장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