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lti-R.P.G.»

2022. 09. 01 - 2022. 09. 25

장소: 광주문화재단 미디어338
작가: 강동호, 김규년, 김영태, 김은경, 박은수, 윤연우, 윤태준, 이세현, 임수범, 임용현, 정덕용
기획: 김민지 (산수싸리)
코디네이터: 김한라
주최: 컬처호텔 람 (한국예술종합교육원)
주관: 예술경영지원센터, 광주문화재단

R.P.G.(Role Playing Game)는 유저가 게임 속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즐기는 역할 수행게임이다. 흔히 SF나 고전시대를 배경으로 구성된 세계관에 속한 구성원으로써 퀘스트를 깨거나 전투에 참여하며 자신의 능력치를 성장시킨다. 사용자가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기술과 세계관 안에서의 역할이 달라지기도 한다. 즉 현실세계에서 친구들과 PC방을 가거나, 게임 내에서 타인과 함께 R.P.G.에 접속하는 순간 사용자는 오로지 세계관이 설정한 가상의 캐릭터로서 존재하고, 관계한다.

게임과 같은 가상현실 외에도 인간은 가족, 학교, 직장 등의 크고 작은 사회 속에서 다중의 역할을 가지며 살아간다. 보통 역할이라는 것은 주어진 사회적 지위나 위치에 따라서 개인에게 분배된 행동, 즉 명확한 기대와 쓸모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창작자의 경우 그 수행의 범위나 방법이 분명히 규정되지 않고 스스로 모색해야 하며, 역할 수행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의 기준 또한 모호하다. 동시에 예술과 사회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순수예술의 창작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양가적 성질을 가진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전세계적으로 예술가들의 창작 행위를 노동으로 인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생활복지 실현 등 다방면의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그 효과가 분명히 존재함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 창작자가 그 실효성을 정량적 수치와 같은 가시적 성과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것은 자율적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미술시장이나 시민 문화예술 향유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이나,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문화예술의 실질적인 중심지인 수도권에 비하면 그마저도 미비한 수준에 이르는 것이 사실이다. 간헐적이며 가변적인 형태로 주어지는 인정과 보상을 마중물삼아 창작을 이어가는 행위는 때때로 무모하고도 맹목적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소위 현실적 삶이라 이르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마치 또다른 세계 그리고 또다른 자아를 운용하는 듯한 이 모습들은 마치 자발적으로 게임에 접속해 미션을 수행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스갯소리로 온갖 몬스터들이 모여있는 소굴을 뜻하는 던전(dungeon) 따위의 맵과 비유해도 과언이 아닐 이 세계관 속의 캐릭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보다 그 바깥의 세상을 예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밀접하게 접촉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비현실적 세계에 자처해 접속해있는 이들은 언뜻 그들만의 리그(league) 속 롤플레이를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내거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접속 링크를 무한히 송출하고 있다. 집 밖을 나와 보도블럭이 새로 깔리거나 뜬금없는 공공시설이 신축되는걸 보며 으레 의구심을 가지듯, 불특정 수신자들은 이것이 국가재원의 일환을 통해 일구어지는 예술의 결실임을 인지하고 눈길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전시장의 일부를 차지하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이 가상의 던전에서 몬스터를 물리치기 위해 도끼를 휘두르는 난장이가 아닌 비로소 사회적 울림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답(reply)이 필요하다. 전시 «Multi-R.P.G.»는 미술가들의 개별적 세계관이 담긴 작품을 통해 점철되는 사회적 공공재로서의 예술의 양상들을 선보인다. 더불어 창작자, 공공기관, 향유자(시민) 모두를 향한 즐거운 긴장을 전한다.

 

강동호: 블랙홀과 웜홀에 이름을 붙인 미국의 물리학자 존 아치볼트 휠러는 “존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하는 질문에 “It from bit(비트에서 존재로)” 라고 말했다. 비트는 정보를 상징하는 말로 컴퓨터 이용 정보량의 최소 단위를 뜻하며, 우주연구자였던 그는 존재의 근원을 정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착안해 제작한 ‹It from bit› 시리즈는 우리의 존재가 계획된 시스템의 산물이자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램에 수렴한 결과 값이라는 전제하에 인간, 자연과 그 근원을 하나의 결정체로 조합해 보여준다.

 

김규년: 전면의 영상 속 김규년은 독일 카셀 도큐멘타 전시장 인근 대형마트의 고객용 카트에 본인의 작품을 싣고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는 실행 계획, 호객행위 중 행인과의 대화, 종료 후 시행착오에 대한 생각 등 모든 여정이 담겨 있다. ‹비디오 팝니다›는 ‘영상작품 판매를 통한 생존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막연한 고민으로 부터 출발했다. 저렴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즉 박리다매 시장전략으로 길거리 작품 판매에 뛰어든 작가의 모습은 현실적 한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자 예술계 전반에 걸쳐 창작노동과 보상에 관한 모순적 체계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다.

 

김영태: 김영태는 주로 자연과 도시에 얽힌 체감된 기억들을 재현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기억들은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기 보다는 몽환적이고 나른한 기억이다. 작가는 땅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왔던 도시와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라는 비가시적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닌 앵글 안에서 세계를 ‘그려내는’ 또 다른 작업이라 여기는 그는 그리기, 지우기 반복의 결과물로서의 이미지를 선보인다. 이는 감추어진 도시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주름지고, 중첩되며 생성된 ‘그림자 땅’이다.

 

김은경: 김은경은 우연한 계기로 문학의 세부장르 중 하나인 모던 파라벨(Modern Parabel)에 영감을 받았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물론, 작가조차 작품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답이나 결론이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이 문학적 형식은 이념 없는 형상이라 은유되기도 한다. 작품의 의미심장하고 오묘한 분위기의 장면들은 이것이 비단 (가칭) 개구리의 생성과 소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상기시킨다. 황석영의 소설 ‹무기의 그늘› 중 한 문장을 인용한 작품 제목과 모든 작품의 요소들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작품이 끊임없는 생명을 얻어 가길 기대한다.

 

박은수: 박은수는 정형화된 회화의 형태를 탈피해 캔버스에 종이를 두텁게 발라 올리고, 깎아내고, 색채를 칠하고 벗겨내고 하는 과정을 거쳐 인간의 삶과 연계된 철학적 사유와 작가정신을 담아낸다. ‹Life, aura›는 멀게는 도시와 인간의 군상으로 표상화된 현대사회를 미시적 시각으로 추적하며 개인마다의 삶에 담긴 고유한 아우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윤연우: 윤연우의 작업은 평면회화의 전통적 재료인 물감과 종이 대신 직물을 한 땀의 실로 메꾸어 완성된다. 점을 엮어 완성하는 직물이자 동시에 그림이기도 한 이 작품은 회화의 율동과 신체감각, 그림을 도안화하는 정교한 계획, 오랜 시간 반복적인 노동 이 세 가지 다른 감각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쳐 완성된다. 이는 ‘만드는 노동’에서 ‘회화’로의 변주에 대한 시도로, 변화하는 현대미술의 스펙트럼 아래 기술 혹은 장식미술의 영역에 머물렀던 공예성에 대한 반문이자 표면적으로는 수행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자전적으로 담고 있다.

 

윤태준: 윤태준의 작업은 실제 환경에서 촬영한 오브제를 3D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결합과 충돌의 과정을 거친다. 이는 현실 사물의 입체적 특성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고 있지만 결국은 실제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오브제의 물리적 지각과 그것의 시각화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미들턴›은 이로써 가상의 사물에 새롭게 부여되는 성질과 결과적인 시각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드러내는 대표적 작품이며, ‹전형적인 사물들›은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작가임의로 상징성을 부여한 사물들을 주 재료로 삼고 있다.

이세현: 이세현은 역사가 문자로서 남겨진 사건의 기록이라면 장소는 ‘그 기록(역사)의 진실을 내포한 증거공간’이라 말한다. 그의 작업은 DMZ, 군함도, 광주 구도청 등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사적 장소에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프레임 중앙에 위치하도록 돌을 던지는 것이다. 여기서 돌은 기념비적 소재로 작가가 그곳에 있기 이전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그 후의 시간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을 감시자이자 관찰자이다. 작가는 돌을 직접 던지는 행위로부터 그 곳에 일어난 모든 역사적 사건의 근원인 인간의 폭력, 충돌, 대립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임수범: 작가는 어제와 다른 오늘의 풍경을 보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다.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쉬워 작은 스케치를 하고, 그 이미지들을 정리하고 재배열하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재조합된 풍경들은 일견 지나간 것들의 추억 같지만 그 안에서 변화하는 미래에 대한 단초를 발견한다. 상상된 거대한 미래의 풍경들은 마치 생명이 있는 듯 결합하고 분절되며 전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간다. 그것들은 완전한 상상일 수도, 스쳐왔던 풍경일 수도 있지만 결국 끊임없이 미래를 선택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임용현: 임용현은 최초 소비의 순간부터 끊기 어려워지는 미디의 중독성과 그 모순에 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이 같은 현대사회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는 미디어 생산자는 구매자의 소비가 끝나기가 무섭게 새로운 미디어를 생산한다. 미디어 소비에 최적화 된 최신 디지털 기기의 편리성과 손보다 빠르게 다음의 소비를 제시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은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 순환 관계를 적극적으로 독려한다. ‹Apple consume›은 이 순환의 과정을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비유하여 생성과 소멸이 무한정 반복되는 사과(미디어), 즉 미디어 포화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정덕용: 의문의 종소리와 함께 전시장에 울려퍼지는 마찰음은 내부 벽면과 정덕용의 조형물 일부가 부딪히는 소리다. 다소 폭력적인 이 작품의 제목은 의외로 ‹고개숙여 눈맞추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인간을 포함해 동물의 싸움방식 중 하나인 박치기에 영감을 받은 것이긴 하나, 실제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이 조형물은 누군가와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중심적 시각을 기제로 비인간의 범주에 속하는 개체를 향한 무분별한 연민 혹은 동정에 관한 자기성찰을 담고 있다. 작품은 관객에게 어떠한 물리적 타격도 입히지 않지만 조형물의 반복되는 모션은 기괴한 형상, 벽과의 충돌음, 종의 울림소리, 바닥의 떨림 등 여러 감각들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