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창작의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비판적 시각과 동행한다. 작가의 평가(관객)에 대한 자의적 의식 여부와는 별개의 일이다. 때로는 삶의 형태, 작업 방식, 활동 이력, 거주지 또한 작가를 이야기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무한의 스펙트럼을 가진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예술가의 성장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흔히 회자되는 미적 감각, 아이디어, 진출경로의 생성은 각자의 가까운 주변부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극히 개별적이고 희미했던 프레임은 다방면의 물리적 경험을 통해 점차 구체화되며 단기적 네비게이션을 제공한다.
거대한 미술세계에 작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의 정체성을 묻고 답해야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한다. 급속도로 설계하고 해체하는 한국 사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예술현장의 흐름 안에서 미완성의 정체성은 나약하다. 반면 창작자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보여줄 것, 설득할 것’은 영원한 숙제와 같다.
자신(작업)을 빈틈없는 언어로 치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소환되는 진정성은 외부의 시선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진 엄격한 기준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이 장벽은 끊임없이 등장하며 훼방을 놓고는 하는데 어젯밤 내가 세운 것인지 길 가던 행인이 세워놓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예술가는 자고로 자유로운 영혼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무색하도록 자꾸만 생각의, 말문의 꼬리를 잡는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와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 아래 취향, 시의성, 상품성 등 여러 명목으로 세워진 진정성의 장벽을 마주한 이들의 시선을 담는다. 모양과 두께가 각기 다른 장벽의 사이사이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너머의 세상을 그리는 소음과 풍경들은 해방을 말하고 있다.
김은경: 무기물이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주로 무기물과 생물의 대화가 등장하는 영상을 제작한다. 무기물은 인간, 자연, 동식물과 같은 생물학적 구분 및 과학적 이론 등 인간에 의해 정립되어온 체계들을 무용하게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을 권유한다. 또한 작품 속 개체들은 비정형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로 실질적인 지칭 대상 혹은 그의 존재 여부를 끊임없이 뒤바꾸며 작품을 바라보는 모든 객체와 그 이상을 수용하는 성격을 가진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prologue›는 작품에 등장하는 개체들의 본래 정체성과 변화의 과정을 드로잉 설치물에 담고 있다.
정덕용: 미디어를 통해 무수히 생산되고 소비되는 각종 정보와 사용자들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특정 인물부터 사회적 상황까지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접속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보의 진위여부에 대한 인지나 사용자의 윤리의식 등 작가는 디지털 매체의 발달이 야기하는 사회적 현상을 조명한다. ‹Mixture-1, 2›는 곳곳에 산재한 정보가 담긴 인쇄물을 분쇄해 티백으로 제작해 우려 차(Tea)로 재탄생시켰다. 영상작업 속 차를 마시는 인물의 모습은 무분별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쉬이 실증을 내기 일쑤인 현대인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임수범: 작가는 매체를 막론하고 부유하는 수많은 이미지들과 실재 세계 사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일상적 풍경들을 직접 촬영하며 이미지를 수집하고 동일한 이미지를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연쇄적으로 그려나갔다. ‹계속 배열›, ‹배열 반복(끝 없는 지평선)›, ‹배열 재배열4›을 통해 보여지는 풍경은 각개의 캔버스를 거치며 낯선 색과 형태로 변화하는 이미지를 따로, 또 같이 나열하고 있다. 특정 대상의 회화적 재현이 내포한 예술적 가치에 관한 본질적인 의문에 기반하여 표현기법적 실험과 지극히 자전적인 탐색의 과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도훈: 작업의 전반에 아울러 자전적 고민과 이중, 삼중적인 페르소나의 충돌을 과감히 드러낸다. 스스로 일종의 신호탄처럼 기능하기를 바라는 그의 작업은 동시대 작가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관객을 대상으로 확장하여 예술 생산자와 향유자의 태도적 측면을 직·간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예술을 업으로 이어가는 행위와 현실적 충돌의 지점을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넘나들며 바라보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캔버스를 긁어내고 덧입히는 과정이 수없이 축적된 ‹Live Strong› 시리즈는 이러한 작가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