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산마을은 일제 침략을 피해 모여든 피난민들이 세운 판자촌으로 마을의 역사를 시작해 1960-1970년대 강 건너 임동에 위치한 전남방직공장에서 근무하는 여공들이 고향을 떠나와 거 주하게 되면서 마을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당시 마을에는 여공들의 출퇴근을 위해 방직 공장 과 발산마을을 잇는 다리가 하나 지어졌다. 여공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자재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매일 일터로 나갔고 월급날이면 고기 한 근을 끊어 집으로 돌아왔다. 대안공간 뽕뽕브릿지의 이름은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다. 현재 뽕뽕브릿지 건물의 2층은 한 때 여공들이 묵는 숙소로 사용되었는데, 원형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재정비되어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의 할머니 정현남은 1937년 전남 광산군 송정동(현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서 사남매 중 막내딸로 출생하여 돌이 지나기 전 아버지를 잃었다. 그녀는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부양 하기 위해 17세의 어린나이에 전남방직공장에 취직하여 혼인하기 전까지 약 9년간 여성공장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나는 성인이 다 되고 나서야 내 할머니 정현남이 과거 계약 노동을 수행한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손녀딸인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나는 단순히 그녀가 나의 할머니였다는 이유 이외에, 그녀 혹은 그녀들의 노동 이 어떤 과정을 통해 묵언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할머니가 노동을 수행한 1950년대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아프레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프 레걸’은 전후(戰後)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프레게르(apres guerre)’와 영단어 소녀(girl)를 합 성한 조어로 사치와 퇴폐를 일삼는 여성들을 지칭했다. 1950년대 여성잡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아프레걸’ 담론은 전후시기 소비주체로 등장한 여성들을 미국식 문화와 자유주의의 향 락에 젖어 각종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본 전시는 아프레걸 담론 안에 존 재하는 4가지 여성 군상인 양공주, 유한마담, 공장가시네, 여대생들로 대표되는 1950년대 여 성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이를 한 여성 노동자의 생애사와 대비시켜봄으로 여성들에 덧입혀 진 허구적 이미지와 실제 여성의 삶 사이의 간극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