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서 열의 초상으로»

2023. 05. 11 - 2023. 06. 03

장소: 산수싸리
작가: 남석우, 서혜민, 윤태준, 임수범, 임인자, 정덕용, 정한결
기획: 김한라, 서혜민
주최: 산수싸리
주관: 산수싸리

또다시 이 즈음을 맞이한, 또다시 이 곳에 선 저마다의 초상은 그 수만큼으로 혼란하고 혼재하다. 해마다 돌아오는 시점, 위치불변의 지점이라는 명백함을 저마다의 불명확함으로 딛는 일은 또다시 어렵다.

 

무엇보다 우선하여, 전시는 이 반복을 회의하는 목소리에 답하는 설명서이고자 한다.

들뢰즈가 이야기한 반복의 두 가지 형식을 빌린다. 하나는 흔히들 떠올릴 것으로, 똑같은 개념 아래의 대상들이 각각 해체·분리되며 나타나는 반복이다. 예시로는 무엇도 구하지 않은 채 그만하면 되었지 않느냐고 매년 묻기만 하는 일 따위가 있겠다. 다른 하나는 각각의 대상들을 해체하거나 그저 사례로써 분리하지 않으며, 매번 측량 불가능한 차이들이 생성되어 자아내는 고유한 차이로 그간의 누적된 시간들과 나아갈 시간들을 종합하는 반복이다. 오월은 고정불변한 역사이고, 오월은 틀림없이 매해 돌아오는 시점이고, 오월은-저마다의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누구에게도 달력 속 한 장의 ‘그냥 단지 오월’이 될 순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월을 반복하는 것이 불가피한 우리가 이제는 반복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비로소 어떤 반복을 행할지 물어야 하는 일이 좋은 예시이겠다.

 

따라서, 전시는 새로운 반복에 대한 연명서이고자 한다.

오월과 관련한 문화예술 행사와 축제들, 사회정치적 행보들 대다수가 무사유와 무성의한 반복을 일관해왔다. 권태와 실망을 느끼고, 외면과 무념으로 반응하는 대부분의 원인인 이러한 반복의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어김없는 오월을 어김없이 반복하는 일을 새로이 하겠다는 것이 자칫 역설적으로 들리는 것처럼 작가들은 새로운 작업이 아닌 오히려 과거의 작업을 재고하고 되건다. 이 역설을 무릅쓰는 동시에 두드러지게 하고자 ‘초상’이라는 무척이나 미시적이고 미규정적인 장치를 시도한다. 지난날의 초상이었을 기존작을 다시금 오월의 광주를 딛고 선 하나로써 재해석하여 오늘날의 초상에 다다르고 이를 과거와 현재의 두 시점에서 살피며 문자로 기록한다. 그 사이사이에 마찬가지로 오월의 광주를 맞은 누구나의 초상들이 더해짐에 따라 순간순간 변화의 과정을 되풀이하지만 그 축적은 하나의 연대로 향함이 점점 뚜렷해진다. 이러한 과정은 이 전시를 단순히 기존작의 복기가 아닌. ‘오월의 초상’의 군집이게끔 한다.

 

전시는 우리를 위한 자구책이고자 한다.

오월은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도달한다. 이를 단절된 어떤 것으로 세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저 지나간 동일한 흔적만으로 남아 가치를 잃고 퇴색한다.

‘오월의 초상’은 저마다의 모습을 일컫기보다는 모두가 살아가고 있을 시간 선상 위 어떤 점 혹은 어떤 범위를 표시하는 새로운 시제였으면 한다. 하나의 선 위로 우리 하나 하나의 시제들은 서로 상이한 수, 위치, 고저, 간격, 구간, 곡률, 분포도 등을 가지기에 끊임없이 변주되는 리듬의 열을 형성하며 흐른다. 또다시 이 즈음을 맞이한, 또다시 이 곳에 선 우리의 초상을 그 수만큼으로 고유하게 거듭 구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김한라 서혜민